충청남도 연기군 서면에 속해 있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으로 편입되었다. 갈미봉과 같은 낮은 산지가 분포하며 대체로 평지로 이루어진 지역이다.
조선 말엽에는 연기군 북일면(北一面)의 지역이었다. 조선 시대에는 창녕성씨들이 많이 살았으며, 그 후 결성장씨들이 살면서 ‘봉서재’라는 서당을 개설하였다. 마을 뒷산을 고산(高山)이라 불렀으며, 이곳에 고산사(高山寺)란 절이 있었다. 지금은 산을 ‘비룡산’이라 부르고, 고산사는 절터만이 그 흔적을 알아볼 수 있으며, 또한 아랫부분에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이곳은 ‘복골’이라 불렀는데 서기 1914년 행정개혁 시 이웃 마을을 병합하여 고복리(高福里)라 하고 연기군 서면(西面)에 편입(編入)되었다.
‘서고(西高)’ 뒤에 있는 산을 비룡산이라 부른다. 사람이 소리를 치면, 이 산에서 울려 퍼지는데 돌을 떼어낸 후부터는 잘 울리지 아니한다고 전한다. 산삼이 있으므로 용이 승천(昇天)하기 위해선 산삼을 먹으려고 이곳에 심었으며 용이 승천(昇天)하는 산이라 해서 비룡산(飛龍山)이라 부르며 산삼이 있으므로 산 아래 물줄기에는 잉어가 올라오지 못한다.
봉서재는 고복리 서고에 위치하고 있으며, 봉옹(鳳翁) 장원주(張元冑, 1634-1700)가 만년에 후진 양성을 위해 창건한 서당이다. 320여 년 동안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고, 근대교육의 모체인 동광학교가 설립된 크고 작은 역사를 창조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.
동고와 서고를 통틀어 ‘고산골’이라 부른다.
동고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.